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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 CF의 역사

 

9. 발렌시아의 부활

 

 선수들과 운영진, 그리고 많은 서포터들은 세군다로의 강등이 발렌시아CF의 문제점을 회복하고 본 방향으로 되돌아가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15년이 지난 후, 발렌시아CF는 강등의 아픔을 지워내고 스페인과 유럽 최고의 팀이 됨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강등 후, 발렌시아를 맡은 회장은 아르투로 투손이었다. 세군다 리가로 강등된 것에 매우 화를 냈던 서포터들은 팀을 떠나지 않고 발렌시아CF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쏟아 부었다. 실제로 관중 수는 도리어 증가했고, 팀은 세군다 리가 우승을 거두며 한 시즌 만에 프리메라 리가로 복귀했다. 그 다음 시즌 팀의 핵심이 된 선수들은 세군다 리가에서 경험을 쌓은 페르난도, 키케, 히네르, 보로, 레베르트, 아로요, 페놀, 보시오 등이었다.

 

 승격 이후 발렌시아는 본연의 자리를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포르투에서 온 라바 마데르가 6개월 동안 뛴 1987/88시즌은 팀의 변화기였고, 14위로 끝을 맺는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가 발렌시아CF를 3번째로 맡았던 시즌이며, 그가 마지막으로 발렌시아CF를 지휘했던 시즌이기도 했다.

 

 그 다음 시즌엔 카디즈를 이끌던 빅토르 에스파라고를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 우루과이인은 팀에 개성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감독이었다. 그가 이끄는 발렌시아CF는 1988/89시즌 3위, 1989/90시즌 2위라는 성적을 기록한다.

 

 특히 1989/90시즌은 발렌시아CF에게 화려한 시즌이었다. 리그와 코파 델 레이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UEFA컵 예선에선 포르투와 두 차례 격돌하기도 했다. 에스파라고가 팀의 경기력을 향상시켰지만, 리그 초반에는 실망스러웠다. 시즌이 시작한 후 CSKA소피아에서 루보슬라프 믈라데노프 페네프가 발렌시아CF로 이적해왔다. 또한 이 시즌은 발렌시아CF에서 12년간 있던 하비에르 슈비라츠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다음 시즌, 바르셀로나에서 뛰다 돌아온 호베르투의 영입으로 2위라는 성적을 다시 거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시즌 발렌시아CF는 고작 7위에 머무르고 만다. UEFA컵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판정 속에 로마와의 경기에서 탈락했고, 코파 델 레이 8강에서는 마요르카에게 패배하며 서포터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1991/92시즌, 발렌시아는 팀 보강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다. PSV 아인트호벤을 유러피언 컵 우승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가 감독을 맡았고, 파나마 공격수 롬멜 페르난데스와 브라질 왼쪽 수비수 레오나르도를 영입했다. 히딩크가 이끄는 팀은 4위로 리그를 마쳤고, 코파 델 레이 8강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배했다.

 

 그 다음 시즌은 토손의 뛰어난 팀 운영으로 흑자로 기록한다. 또한 새로운 발렌시아CF를 만들겠다는 강한 열망으로, 여러 가지 일이 추진되었다. 페테르나에 훈련장을 지었고, 클럽의 구조를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또한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 경기를 메스타야에 유치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시즌, 발렌시아CF에서 가장 많은 시즌과 공식 경기를 소화한 히카르도 아리아스가 은퇴했다. 발렌시아CF의 서포터들은 역사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웠던 선수를 떠나 보내야 했지만, 파코 카마라사로 그 자리를 잘 대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