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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 CF의 역사

 

8. 세군다 리가로 추락

 

 발렌시아CF의 상대는 전 슈퍼컵 우승팀이자, 유러피언컵 챔피언으로서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던 노팅험 포레스트였다. 원정 경기에서는 노팅험 포레스트에게 1-2로 패했다. 이 경기에서 발렌시아CF는 펠만이 득점에 성공했다. 다음 루이스 카사노바에서 열린 홈 경기에서, 발렌시아CF는 페르난도 모레나가 골을 넣으며 1-0 승리를 거두었다. 종합 점수는 2-2였지만, 원정경기 다득점 원칙에 의해서 발렌시아가 우승컵을 차지했다.

 

 리그에서는 비록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발렌시아CF는 우승팀 레알 소시에다드보다 3점이 적은 4위를 기록한다. 리그에서는 이렇게 평범한 성적을 거둔 이유 중 하나는 모국으로 돌아간 마리오 켐페스와 페르난도 모레나의 부재 때문이었다.

 

 이 시점부터 사회적인 면에서, 스포츠적인 면에서 발렌시아CF의 상황은 나빠지기 시작한다. 당시 스페인이 개최한 월드컵 때문에 경기장 시설 향상에 많은 자금을 투자해야 했고, 이는 클럽의 재정에 큰 부담을 가져다 주었다. 1981/82시즌에 발렌시아CF는 우승권에 접하지 못하며 5위로 시즌을 마친다. 켐페스와 모레나가 떠난 후, 새로 영입한 뛰어난 선수로는 덴마크의 프랭크 아르네센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자주 나서지 못했고, 오직 첫 시즌에만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향후 자신의 시대를 만들며 팀의 아이콘이 될 호베르투 페르난데스 또한 그 해에 데뷔했다.

 

 이어진 1982/83시즌부터 재앙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재정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밀한 밀랸 밀랴니치가 감독으로 있던 이 시즌의 유일한 즐거움은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끌던 바르셀로나를 이긴 일이었다. 또한 마리오 켐페스는 다시 발렌시아CF로 복귀했고, UEFA컵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닉 오스트라바,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를 격파했다. 하지만 나머지는 문제점과 절망으로 가득했다. 시즌 종료까지 7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발렌시아CF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있었고, 사리아에게 2-5로 패한 후 밀랴니치는 경질되고 콜도 아기레가 새로운 감독이 된다.

 

 강등을 피하고 1부 리그에 잔류하기 위해서 발렌시아CF는 마지막 경기를 무조건 승리한 후, 다른팀들의 결과를 지켜봐야 했다. 메스타야에서 발렌시아CF는 리그 우승을 노리던 레알 마드리드와 경기를 했지만, 텐디요의 골로 1-0 승리를 거두었다. 그 라운드의 다른 경기도 모두 발렌시아CF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라싱 산탄데르를 제압했고 셀타 비고 역시 바야돌리드에게 1-3으로 패했다. 동시에 라스 팔마스도 빌바오에게 1-5 패배를 당한다. 빌바오는 이 승리로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발렌시아CF는 기적적으로 잔류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후 계속된 시즌(1983/84, 1984/85)은 점점 상황이 악화되었다. 라모스 코스타는 회장직을 사임했고, 그 자리는 비센테 토르모가 맡았다. 클럽의 빚은 2,000M 파세타가 넘어갔고, 팀의 멤버는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어린 선수들이 많은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 중에 특히 언급할 선수가 있으니, 그는 바로 발렌시아CF에 모든 것을 바친 페르난도 고메스 콜로메르였다.

 

 클럽의 상황은 점점 어려워졌고,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극한의 상황까지 치닫게 되었다. 많은 선수들이 주급을 받지 못했고, 클럽은 빚에 허덕였다. 선수들의 훈련은 오스카르 루벤 발데스가 맡았다. 새로 영입했던 선수들도 상황을 바꾸지는 못했다. 무뇨즈 페레스와 산체스 토레스는 발렌시아CF에 있던 선수와 차이점이 없었다. 결국 1985/86시즌, 발렌시아CF는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시즌 초는 나쁘지 않았지만, 점점 상황은 나쁘게 흘러갔고, 22라운드에는 아토차에서 0-6으로 패하면서 오스카르 루벤 발데스가 해임되고 디 스테파뇨가 다시 감독으로 복귀한다. 4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발렌시아CF가 자력으로 강등을 피할 방법은 남아있지 않았다. 비록 세비야를 2-0으로 꺾고, 에르쿨레스를 3-1로 꺾으며 잔류의 희망을 이어갔지만, 캄프 누에서 바르셀로나에게 0-3으로 패하고, 카디스가 베티스와 비기면서 강등이 확정되었다. 리그 4회, 코파 델레이 5회, 페어스 컵 2회, 컵위너스컵 1회, UEFA 슈퍼컵 1회 우승을 기록하며 국제적으로 널리 명성을 떨친 1부 리그에서의 55년의 역사가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당시의 강등은, 지금까지도 구단의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