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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Crack 다비드 알벨다

albelda.jpg

 

Personal Information

이름 : 다비드 알벨다 (David Albelda Aliques)
생일 : 1977년 9월 1일
출신 : 스페인 발렌시아
포지션 :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 181cm / 77kg

 

Career

1995~1996 : 발렌시아 메스타야
1996~2013 : 발렌시아
→ 1996~1997 : 비야레알 (loan)
→ 1998~1999 : 비야레알 (loan)


Biography

 '보안관'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발렌시아의 수비형 미드필더. 앙굴로, 비센테와 함께 발렌시아 지역 토박이 스타로서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마켈렐레 만큼 뛰어난 운동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 판단에 매우 능숙하고, 상대의 패스 줄기를 차단하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다. 루벤 바라하와 함께 2000년대 초•중반 라 리가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콤비를 형성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의심의 여지없는 최고의 미드필더 다비드 알벨다는 2001-02 시즌 팀이 리그 우승을 차지할 당시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으며 지금까지도 그의 클래스는 팀 내 '핵심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발렌시아 주 리베라 알타 지역의 라 포블라 야르가에서 태어난 "Davi", 알벨다는 그의 나이 12살 때 발렌시아 산하의 UD 알지라에 입단한다. 축구계에 발을 들여놓은 알벨다의 재능을 지켜본 발렌시아는 그가 프리메라리가 선수가 된다면 UD 알지라에 250만 페세타를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5만 페세타에 알벨다를 데려온다.

 

 그리고 얼마후인 1997년 , 말레이시아 월드 유스컵을 준비하고 있던 스페인은 그를 이 멤버에 올렸고 1년후인 1998년, 9월 21세이하 대표팀에 발탁되면서 니코시아에서 벌어진 사이프러스와 가진 경기에서 3대1의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공교롭게도 그 다음날 벌어진 유로2000 예선전에서 스페인은 사이프러스에게 2대3의 어이없는 패배를 당했다.)그리고 2년뒤인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스페인올림픽대표팀에 선발되어 바르셀로나의 사비,가브리, 아틀레티코의 호세마리, 그리고 팀동료 앙굴로와 함께 스페인에 은메달을 안겨주기도 하면서 그의 입지를 점점 넓혀가기 시작한다.

 

 A매치 데뷔 전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지역예선 대 리히덴슈타인(2001년 9월)전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두 경기에 출전했고, 유로 2004와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뛰었으나 2006년 독일 월드컵16강전에서는 징계로 인해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스페인은 프랑스에게 1:3으로 패했다.

 

 하지만 항상 순탄한 축구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축구인생에 종지부를 찍을지도 모르는 부상을 몇 번이나 당한 선수이기도 하다. 96-97시즌에 팀 동료 앙굴로와 함께 발렌시아B에서 뛰다 비야레알B로 임대를 가면서 활약했고 그 다음 시즌에 쥬키치, 멘디에타, 클라우디오 로페스 등이 뛰고 있었던 발렌시아 1군에 합류하면서 꿈을 이루는 듯 하였지만 97년8월 브라질의 파우메이라스와 가진 친선경기에서 무릎의 십자인대가 파열되고 반달판을 다치면서 무려 8개월 동안 경기에 뛰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끊임없는 재활치료로 인해 이를 극복했고 98년 3월에 있었던 프리메라 리가, 레알 사라고사전에서 후반전에 루마니아출신의 골게터, 아드리안 일리에와 교체하면서 처음으로 발렌시아 1군에서 데뷔를 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알벨다의 무릎은 아직도 완전치 못했고 결국 97-98시즌은 5경기를 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발렌시아는 계속해서 부상의 악령에 시달리는 알벨다를 98-99시즌을 앞두고 또 다시 비야레알로 임대를 보내버린다. 물론 알벨다는 비야레알에서 뛰면서 30경기를 뛰면서 활약하지만 비야레알은 18위에 머물면서 세군다리가로 추락하게 된다.

 

 그러나 알벨다의 진가를 확인한 발렌시아는 다시 그를 팀으로 불러들였고, 알벨다는 헤라르드, 멘디에타, 킬리 곤잘레스같은 유능한 팀 동료들과 짝을 맞추면서 99년에 수페르 코파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알벨다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찾아오는데 출장기회를 늘리면서 점점 스페인에 그의 이름을 알려가던 99-2000시즌 라요전에서 요렌스의 강력한 태클에 걸리면서 왼쪽 종아리 뼈골절을 입었고 3개월 진단서를 받으면서 또 다시 부상의 악령에 시달려야만 했지만 이를 오뚝이같이 다시 극복하면서 경기에 뛰게 되었고 99-2000시즌 발렌시아가 라치오, 바르셀로나를 격파하면서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의 업적을 이룰 때 공헌을 하면서 이탈리아클럽으로부터 러브 콜을 받았지만 그는 이 유혹적인 이탈리아클럽들의 제의를 거부하고 고향 팀인 발렌시아에서 뛸 것을 다짐한다. 2번에 걸친 큰 부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시 일어나서 발렌시아전력의 핵이 된 것은 어쩌면 그의 인생의 신조라는 "웃음"에서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2001년 7월은 알벨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팀의 핵심전력인 멘디에타가 거액의 이적료(2900만 파운드-한화 약 380억원)로 이탈리아의 라치오로 이적했는데 이는 주장자리가 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멘디에타와 같이 이탈리아로 날아간 명장 헥터 쿠페르의 뒤를 이어 발렌시아의 감독이 된 라파엘 베니테스는 이 주장자리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내린 결론은 베테랑 아얄라, 카르보니, 카니사레스, 그리고 토종 발렌시아출신인 알벨다, 이렇게 4명을 주장후보로 올리는 것이었다.


 카니사레스와 또 다른 주장에 임명된 알벨다는 선전을 다짐했는데 그의 이런 정신력은 개막전이었던 레알 마드리드전에서 그대로 나왔다.99-2000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0대3, 그리고 2000-2001 프리메라리가에서 가진 2차례 경기에서 모두 패배를 당하면서 쓰디쓴 기억을 가지고 있는 지단까지 영입시킨 레알 마드리드를 맞아 알벨다는 지단을 완전히 봉쇄하는 놀라운 맨마킹 능력을 보여주었고 이는 비센테, 루페테, 앙굴로에 까지 이어지면서 레알 마드리드 격파의 선봉장이 된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받아 그는 2003년 12월 발렌시아와 계약을 6년 연장한다.

 

 그의 이런 성장한 모습은 발렌시아에 38년만의 프리메라 리가 우승컵을 안겨주었는데 당시 스페인 대표팀 감독이었던 카마쵸는 알벨다를 가리켜 "주장으로써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라고 극찬하면서 그에게 무적함대탑승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알벨다는 리히텐슈타인전에서 첫 출장하면서 무적함대선원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팀의 2대0 승리에 기여하면서 카마쵸의 머리의 그의 이름을 깊이 각인시켰고 결국 그는 2002년 월드컵대표팀에 뽑히면서 한국땅을 밟기에 이른다. 물론 출장은 아일랜드전에서 모리엔테스와 교체하면서 후반전, 그리고 연장전을 치른 게 고작이었지만 그에게는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다.

 

 월드컵이 끝난후 새로 스페인의 지휘봉을 잡게 된 이나키 사에스는 발렌시아의 주장 알벨다를 계속 대표팀 명단에 올렸고, 그는 이런 사에스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발렌시아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다. 미드필더 진에서 바라하와 함께 이른바 ‘바라하-알벨다’ 콤비로 불리는 스페인, 아니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라인을 구축하면서 발렌시아를 점점 유럽 최강클럽의 반열에 올려놓기 시작했고 2003-2004시즌에 발렌시아에 프리메라리가, 그리고 UEFA컵의 2개의 우승컵을 안겨주기에 이른다.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이지만 좀 더 공격적이며 유사시에는 득점력까지 가진 루벤 바라하. 그리고 바라하의 뒤에서 중원을 장악하고 상대팀의 위험선수를 차단해주는 다비드 알벨다 라는 무적콤비를 보면서 유럽 축구팬들은 열광하기 시작했고 이는 그대로 스페인 대표팀에도 반영되면서 유로2004에서도 알벨다는 스페인대표팀의 주전을 꿰찼지만 의외의 부진을 보여주었고 결국 스페인의 탈락원인의 한 요인이 되어버렸다.

 

 유로2004에서 스페인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알벨다의 능력을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04-05시즌은 알벨다의 축구인생에 있어서 오랜만에 찾아온 암흑기라면 암흑기라고 할 수 있겠다. 7년 만에 다시 발렌시아의 지휘봉을 잡은 라니에리가 추진한 발렌시아의 이탈리아 스타일 변신은 실패로 돌아갔고, 팀 성적은 크게 곤두박질 치게 됐는데 알벨다 역시 잦은 부상으로 고비 때마다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며 팀의 추락을 막을 수는 없었다. 못해도 UEFA컵 진출권인 5위, 6위정도는 했었던 발렌시아가 고작 7위에 머물렀고 그 자격으로 얻은 인터토토 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며 유럽대항전 진출에 실패했다는 것은 발렌시아나 알벨다에게는 충격적인 사실일수밖에 없었다.

 

 대표팀의 새로운 감독인 루이스 아라고네스는 그 동안 대표팀의 부동의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알벨다가 잦은 부상으로 경기감각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내렸는지, 이른바 더블 샤비라인이라고 불린 샤비 에르난데스와 샤비 알론소를 같이 중앙미드필더에 배치시켰고 꽤나 성공적이라는 반응을 얻었다. 한때 스페인 언론은 알벨다를 과감하게 주전에서 제외하고 컨디션이 좋은 바르셀로나의 샤비와 리버풀의 샤비를 기용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키케 플로레스가 취임한 05-06시즌의 발렌시아는 확실히 라니에리가 이끌었던 발렌시아와는 확연히 다르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알벨다 역시 새로운 동료인 비야, 그리고 기존의 바라하, 카니사레스, 앙굴로 등과 함께 훌륭히 팀을 이끌어 나가면서 발렌시아의 부활을 이끌었다. 게다가 한때 대세라고 판단되었던 더블 샤비 라인은 수비력에서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고, 결국 제 컨디션을 찾은 알벨다가 다시 대표팀의 주전으로 기용하기 시작한다.

 

 06/07시즌에도 부상병동으로 시달리던 발렌시아는 그와 비야, 실바를 비롯한 몇몇에 의해 겨우 4위를 차지했다. 시즌 중에 1군 엔트리가 15명에 불과했던 적도 있을 정도로 부상악령에 시달리던 발렌시아였기에 4위는 성공적인 순위였다. 

 

 하지만, 07/08시즌은 알벨다의 제2의 암흑기였다. 경영진과의 불화, 팬들의 비난으로 키케 플로레스가 팀을 떠나고, 발렌시아 팬들에게 최악의 감독으로 기억되는 로날드 쿠만이 부임한다. 그는 앙굴로, 카니사레스와 함께 팀에서 배제되고, 팀과 바이아웃 조항 등으로 인해 소송까지 가는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경기는 물론이고, 팀 훈련에조차 참가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태는 결국 그의 스페인 대표팀 제외로 이어졌다. 그는 결국 마르코스 세나에게 밀려 유로 우승컵을 안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시즌 후 이적을 심각히 고려했던 그는 쿠만의 경질이 결정되자, 팀 잔류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고, 신임 감독 우나이 에메리와 신임 회장 비센테 소리아노의 설득으로 결국 잔류한다. 하지만, 그는 주장직을 사임했고, 08/09시즌의 주장은 카를로스 마르체나, 부주장은 라울 알비올, 3주장은 비센테, 4주장은 다비드 비야로 정해졌다.

 

 08/09시즌의 발렌시아는 쾌조의 출발을 보였고, 알벨다 또한 클래스의 완전 부활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리가 정상급의 실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주장 마르체나와 부주장 알비올이 제대로 리더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수비라인은 아얄라의 이적이후 끊임없이 흔들렸다. 게다가 카니자레스의 은퇴, 힐데브란트의 제외로 인해 이적생 헤난 브리토(23)가 수문장을 맡으면서 안정을 찾지 못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그는 심판에게 어필하고,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등 팀의 정신적 지주로서 그라운드 위에 존재하고 있다.

 

 10/11시즌 라 로마레다에서 열린 사라고사와의 원정 경기에서 교체로 출장하면서 , 발렌시아 소속으로 총 489경기에 출장 발렌시아 역사상 4번째로 많은 출장기록을 세운 선수가 되었다. 3번째로 많은 출장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미겔 앙헬 앙굴로로 498경기에 출장하였다. 10/11시즌을 마지막으로 계약기간이 끝나게 된 알벨다는 구단의 재정이 좋지 않음을 이해하고 자신의 연봉의 절반을 삭감하며 1년 재계약에 합의했다.

 

 11/12 시즌 구단의 베타랑들이 대부분 팀을 떠나며 알벨다에게 주장을 돌려줘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그리고 알벨다가 이를 받아들이며 3시즌만에 다시 주장 완장을 차게 되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전으로 매경기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실력이 여전함을 증명해보였고, 다시 한 번 1년 재계약에 합의했다. 재계약식에서 알벨다는 "내 실력이 떨어질 때까지 발렌시아에서 계속 뛸 것이다."고 말했다.

 

역대 발렌시아 선수의 출장 기록 (2011년 3월 15일 현재)
1위 페르난도 고메스 (681경기) 
2위 히카르도 아리아스 (616경기) 
3위 미겔 앙헬 앙굴로 (498경기) 
4위 다비드 알벨다 (489경기)
5위 마놀로 메스트레 (488경기)

 

Honours

1998-1999 스페인 코파 델 레이 우승
1999 스페인 슈퍼 컵 우승
2001-2002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우승
2003-2004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우승
2003-2004 UEFA Cup 우승
2004 UEFA Super Cup 우승
2007-2008 스페인 코파 델 레이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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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7

아이쿠수줍 2010.05.08. 19:38

알형 사랑합니다. 알형. 꿈과 희망과 기대와 용기를 주셈요 알형.

댓글
Mediapunta 2010.10.08. 21:32

누가 뭐래도 저에게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는 알벨다 당신입니다.

댓글
라멜라 2012.07.22. 00:27
이제 선수생활의 황혼기를 맞이하셨네요
댓글
지요 작성자 2013.06.11. 17:37
Coaching Career 기대할게요.
댓글
비센테 2015.01.23. 09:22
피어스브로스넌 닮은 알벨다형님~
댓글
No6Albelda 2016.01.16. 21:38
진심 알주장님 지도자자격따고 코치복귀하셔야지
댓글
Aimar10 2016.09.19. 19:48
z크....발렌시아니스타 LEG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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