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Ex 호아킨 산체스

joaquin1.jpg

 

Personal Information

  • 이름 : 호아킨 산체스 (Joaquín Sánchez Rodriguez)
  • 생일 : 1981년 7월 21일
  • 출신 : 스페인 카디스
  • 포지션 : 오른쪽 미드필더
  • 신체조건 : 179cm / 75kg

 

Career

  • 1994~1999 : 레알 베티스 (Youth)
  • 1999~2006 : 레알 베티스
  • 2006~2011 : 발렌시아
  • 2011~2013 : 말라가
  • 2013~2015 : 피오렌티나
  • 2015~   : 레알 베티스

 

Biography

 호아킨은 힘, 기술, 스피드를 두루 겸비한 스페인 대표팀과 발렌시아의 오른쪽 날개이다.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도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로써, 빠른 스피드와 훌륭한 테크닉, 힘찬 드리블 능력, 그리고 위협적인 크로스, 순간적인 침투능력까지 갖춘 클래식 윙어다.

 호아킨은 카디스 출신으로, 1999년 당시 세군다리가에 있던 레알 베티스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00/01시즌 1군 경기에 36차례 나섰고, 팀은 강등된 지 1년 만에 프리메라리가 재승격에 성공했다. 그리고 01/02시즌의 그는 가히 '괴물'이라 불릴 정도의 모습을 보이며 팀이 UEFA컵 출전권을 따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국가대표에서도 '다이나믹' 윙어의 진면목을 선보이며 2002년 2월 포르투칼과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4개월 후인 6월에는 한일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었다. 더불어 01/02시즌 라리가 올해의 신인 선수로 선정되며 한껏 주가를 높였다.

 그러나 대한민국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실축으로 인해 아픈 기억을 갖게 된 호아킨은 이를 수만 번이고 되뇌었고, 02/03 시즌에도 리그 정상급 선수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시즌 직후 명문클럽들의 레이더에 포착된 호아킨은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인테르 밀란, 유벤투스 등으로의 이적 설에도 불구, 베티스의 챔피언스 리그 진출 및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주도하며 고향 팀을 위해 전성기를 불태우는 모습을 보였다. 팀은 그와 계약을 2010년까지 연장하면서 바이아웃을 무려 6000만 유로로 설정했다.

 01/02~04 /05시즌까지 4시즌 동안 연속 두 자릿수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절정에 달한 그는 베티스의 04/05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 05/06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이끌었다. 그는 05/06시즌이 끝난 후, 청운의 꿈을 안고 2006년 여름 2500만 유로의 이적료(발렌시아 클럽 최고 이적료)에 발렌시아 CF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06/07 시즌 발렌시아로 이적한 호아킨은 누구나 꿈의 라인이라고 불렀던 ‘좌센테 우아킨’라인을 구성할 것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비센테의 잔부상이 심해지고, 자신의 부진이 겹치면서 두 선수가 동시에 뛴 경기는 몇 경기 되지 않았다. 호아킨은 발렌시아로 이적하면서 베티스 시절의 화려한 개인기, 상대 수비에게 밀리지 않는 강한 몸싸움, 스트라이커에게 정확히 전달되는 택배크로스를 모두 잃어버린 듯했다. 게다가 잔부상까지 겹치고, 실력이 하락했다고 평가된 호아킨은, 누구나 후보로 전락할 것이라 예상했던 발렌시아의 프랜차이즈 스타 미구엘 앙헬 앙굴로와 포지션 경쟁을 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니, 오히려 앙굴로에게 밀렸다는 것이 옳다고 본다.

 07/08 시즌 발렌시아는 최악의 시즌을 맞이했고, 호아킨 역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비야, 마타, 실바가 분투했지만, 그와 비센테는 여전히 부상과 부진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발렌시아의 혼란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게다가 신임 감독인 로날드 쿠만은 호아킨을 오른쪽 윙어로만 쓰지 않고, 그를 왼쪽 윙어로 투입하거나, 심지어 원톱과 세컨드 스트라이커로까지 기용하면서 호아킨은 자신의 포지션과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 하지만, 그는 시즌 막판 부활의 기미를 보이면서 팬들에게 ‘희망’이란 단어를 선물로 안겼다.

 08/09 시즌 우나이 에메리 체제 하에서 오른쪽 윙 주전으로 자리잡은 호아킨은 베티스 시절의 능력을 되찾아가며 다시금 리그 최정상 윙어로 자리잡았다. 발렌시아의 마타-비야와 함께 환상의 스리톱 라인을 구성하면서 라이트백 미구엘과 함께 리오넬 메시-다니엘 알베스의 바르셀로나 오른쪽 라인과 경쟁할 만큼의 강력한 공격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실바의 부상으로 부재중인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해내면서, 발렌시아의 공격의 활로를 개척했다. 중앙으로의 침투패스, 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스까지 중앙과 측면을 넘나들면서 공격을 이끌었다. 또한 후반 조커로 기용되기 시작한 비센테와 함께 ‘좌센테 우아킨’라인을 후반에 선보이면서 강력한 측면 공격을 퍼부었고, 발렌시아는 전반보다 후반전에 더 훌륭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2010-11 시즌 팀의 3번째 주장이 되었고 1,2주장인 비센테와 나바로가 선발로 나오는 횟수가 줄어듬에 따라 사실상 주장 완장을 계속차고 있다.

 2011년 여름 435만 유로의 가격으로 말라가로 이적했다.

 한편 유로 2004에서는 두 경기 출전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3경기 출장했다. 그는 A매치 기록은 적지 않은 편이지만, 특별하게 인상 깊은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Honours

2004-2005 스페인 코파 델 레이 우승
2007-2008 스페인 코파 델 레이 우승

 

Personal Life

  호아킨은 8남매의 대가족에서 자랐으며 셋째로 두 명의 형이 있다. 8남매 중에 3명이 축구 선수 경험이 있다. 형인 루카스는 카디스에서 선수로 뛰었으며 히카르도는 베티스 유스에서 뛰었다. 호아킨의 삼촌 "El Chino" 는 호아킨의 재능을 확신하고 그가 베티스 유스에 있을 때 그를 위해 매일 카디즈와 세비야를 왕복하는 것을 꺼지지 않았다. 그가  2002년에 사망한 후, 호아킨은 그의 모든 업적을 그에게 바치고 항상 그를 멘토로 여기고 기억하고 있다.

2005년 코파 델 레이 우승 후, 호아킨은 연인 수산나와 7월 8일에 우승 트로피 선물을 증인으로 하고 모든 베티스 선수가 하객으로 참석해 축하하는 가운데 결혼식을 하였다. 그리고 두명의 자녀를 두었다. 2006년 9월 22일 다니엘라, 2010년 9월 23일 살마.

 

 

 Link

 http://www.youtube.com/watch?v=NpvrA_dcTLo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15

3davids 2010.06.17. 06:42

댓글이 없다니..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

좌센테 우아킨의 완성과 함께 저도 발렌시아 빠돌이가 되었다는!!

댓글
Adam 2010.08.03. 21:08

덧글이 다 삭제됬네요.. 저도 호아킨에 반해서 발렌시아 팬이 됐죠.. 그아호!

댓글
Valencia012 2010.11.30. 20:40

당신은 언제나 나의 넘버원!

댓글
쎄피로쓰 2012.04.04. 13:48
그아호 말라가로 가고나니까 황소드리블과 크로스가 많이 그립네여...
댓글
둘리뱃 2012.04.04. 20:15
말라가 경기 보니까 아직도 힘있고 빠르던데ㅠㅠ
댓글
PaaastA 2013.06.25. 13:15
비센테---비야---호아킨 이때부터 발렌시아 좋아했는뎅.... 다 없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댓글
bluerock 2014.12.30. 15:51
이 형도 이제는 은퇴할 나이가...
댓글
비센테 2015.01.23. 15:40
피오렌티나에서도 꽤 잘하고 계시지 않던가요 ㅋ
댓글
Bino 2016.12.03. 01:44
비야와 함께 나 자신을 발렌시아에 매료시킨 장본인.. ㅠㅠ
댓글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