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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 마누엘 페르난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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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Information

  • 이름 : 마누엘 페르난데스(Manuel Henriques Tavares Fernandes)
  • 생일 : 1986년 2월 5일
  • 출신 : 포르투갈 리스본
  •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 신체조건 : 178cm / 69kg

 

Career

  • 2004~2007 : 벤피카
  • → 2006     : 포츠머스 (loan)
  • → 2007     : 에버튼 (loan)
  • 2007~2011 : 발렌시아
  • → 2008     : 에버튼 (loan)
  • → 2011     : 베식타스 (loan)
  • 2011~2014 : 베식타스
  • 2014~2019 :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 2019~2020 : 크라스노다르
  • 2020~    : 카이세리스포르

 

Biography

 마누엘 페르난데스는 1986년 2월 5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태클과 마킹에 능하고 볼 키핑이 좋을 뿐 아니라, 엄청난 활동량을 바탕으로 중원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수비형 미드필더다.

 마누엘 페르난데스는 포르투갈 3대 명문 중에 하나인 벤피카의 유스 시스템의 작품이다. 그는 2003/04시즌에, 호세 안토니오 카마쵸 감독 아래서 처음으로 1군 데뷔를 했다. 당시 팀의 주전이던 티아구가 첼시로 이적함에 따라 주전이 되었고, 수비형 미드필더인 그는 그의 두번째 게임에 득점을 함으로써 득점한 두 번째로 어린 선수가 되었고, 그 즉시 카마쵸 감독과 벤피카 서포터들에게 인상을 주었다. 2003년에 그는 포르투갈 소속으로써 피파 U-17월드 챔피언쉽에서 8강에 진출했지만, Tampere(핀란드의 도시)에서 스페인에게 5대 2로 져서 탈락했다.

 그는 04/05시즌에 1군의 주전이 되었고, 중앙에서 엠마뉴엘 프티와 함께 플레이 하였다. 이탈리아 매니저인 지오반니 트라파토니의 지도 아래서, 그는 벤피카가 수페르리가(포르투갈 1부 리그)에서 우승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11년 만에 벤피카가 수페르리가를 우승한 그 시즌에, 마누엘 페르난데서는 단지 다섯 게임만 결장하는, 영향력 있는 시즌을 보냈다. 또 그는 UEFA컵에서 벤피카가 32강에 CSKA 모스크바에게 지기 전까지 7경기에 출장하였다. 2003/04시즌 10경기에 출장하여 1골, 2004/05시즌 29경기에 출장하여 1골, 2005/06시즌 28경기에 출장하여 1골을 기록하게 된다.

 U-15세 대표팀부터 포르투갈 대표팀에 계속 뽑혔던 그는, 2005년 아일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성인 대표팀 데뷔를 하게 된다. 한 달 뒤, 그의 성인대표팀 두 번째 경기에서, 그는 포르투갈이 캐나다를 상대로 4-1로 승리한 경기에서 첫 골을 넣으면서 데뷔 골을 넣는다. 페르난데스의 뛰어난 위치선정과 밀착방어능력, 볼 키핑 능력은 전 첼시(현 인테르)의 감독인 무리뉴 감독으로부터 같은 나이 때의 마케렐레보다 뛰어나다고 평가 받기도 하였다. 무리뉴 감독의 평가 후 벤피카와 포르투갈 팬들은 마넬렐레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2005/06 프리 시즌에, 마누엘 페르난데스는 탈장으로 인해 뮌헨에서 Ulrike Muschaweck에게 수술을 받는다. 05-06 챔피언스리그에서, 마누엘 페르난데스는 릴, 맨유, 비야레알, 리버풀와의 경기에 풀 타임 출전을 하였고, 비야레알과의 1차전에서는 1골(동점골)을 득점하여 무승부를 만들기도 하였다. 맨유, 바르셀로나, 리버풀과 경기를 함에도 바르셀로나와 맨유에게만 2점을 내어주고 리버풀에게 무실점, 비야레알에게 1실점밖에 하지 않는 수비력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결국 벤피카는 챔스리그 8강에 진출하여 바르셀로나와 격돌하게 되었다. 바르셀로나와의 홈경기에서 1차전 0:0으로 예상외의 선전을 해주었으나 2차전 바르셀로나로 가서 2:0으로 무릎을 꿇어 챔스리그 8강에서 멈춰야만 했다.

 2006년 5월, 마누엘 페르난데스는 포르투갈 U-21세 대표팀이 출전한 2006 EFA European Under-21 Football Championship에서 세 경기를 뛰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1승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07년 6월, 마누엘 페르난데스는 2007 UEFA European Under-21 Football Championship의 포르투갈 U-21대표팀에서, 이스라엘에 4-0으로 이긴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 모든 경기에 출장했지만, 그의 팀은 결국 결승에 오르는데 실패한다.

 페르난데스는 포츠머스와의 임대계약에 사인한다. 그 계약은 그의 사타구니 부상이 완전히 회복될 경우, 700만 파운드의 완전이적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다. 2006년 7월에, 처음으로 이적제안을 받았을 때 그는 아직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메디칼 테스트에 두 번이나 불합격하고, 결국 이적을 완료 짓지 못한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벤피카는 그가 만약 이적시장 마감일까지 건강을 회복할 경우 선수가 포츠머스로 이적하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5주가 지난 뒤, 그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기는 두 달이 남았다는 것이 밝혀지고, 결국 이적조항을 포함한 임대계약이 체결된다.

 페르난데스는 Mansfield Town과의 리그컵 원정 경기에서 포츠머스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경기장에 나온 지 5분만에 득점했고, 포츠머스는 2-1로 승리하였다. 그는 처음 반 시즌 동안은 주전은 아니지만 가끔씩 출전하였는데, Sean Davis와 포르투갈 대표팀 동료  Pedro Mendes 와 중앙에서 함께 출전하였다. 얼마 후 밝혀진 사실이지만, 포츠머스의 해리 레드납 감독은 그가 3경기를 연속으로 출전한다면, 그 선수를 이적시키는데 1200만 파운드를 지불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고 한다. 12월에 포츠머스는 이적료가 너무 높다고 판단했고, 벤피카가 이적료 협상을 하지 않을 경우, 완전이적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페르난데스는 겨울이적시장 때 벤피카로 복귀했다.

 2007년 1월에, 페르난데스는 에버튼으로 임대를 간다. 그 계약은 페르난데스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에이전트에 의해 복잡했지만, 그는 결국 2007년 2월 10일에 블랙번을 상대로 데뷔를 치르고, 그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그는 구디슨의 팬들의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그는 왓포드를 상대로 2월 24일에 처음으로 득점했다. 2007년 4월 28일, 페르난데스는 리그 선두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에버튼에서의 두 번째 골을 넣는다. 에버튼 감독 데이비드 모예스는 벤피카가 요구한 1200만 파운드를 지불하기를 꺼려했고, 페르난데스는 2007년 다시 벤피카로 복귀하게 된다.

 그는 프리 시즌에 준수한 활약을 보인다. 2007년 8월 8일, 에버튼이 벤피카에게 6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제시하였고 2007년 8월 13일, 계약에 합의하였다. 그 계약은 벤피카가 가지고 있던 50%의 소유권을 에버튼이 600만 파운드에 사는 것이었다. 에버튼은 GSI가 가진 나머지 소유권도 사고 싶어했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에버튼은 모든 소유권을 1200만 파운드에 사길 원했다고 한다. 8월 14일, 마누엘 페르난데스는 벤피카의 엔트리에서 빠지면서 머지사이드로의 계약이 완료되었다. 그는 8월 25일 블랙번을 상대로한 에버튼의 경기에도 참석한다.

 하지만 페르난데스는 2007년 8월에 1200만 파운드, 6년계약, 바이아웃 6000만 유로의 조건으로 발렌시아로 이적한다. 페르난데스는 구두로 에버튼 이적에 동의했고, 8월 25일 블랙번과의 경기를 스탠드에서 지켜봤었기 때문에 에버튼 팬들에게는 충격을 주었다. 그는 2007년 9월 2일 발렌시아에서 알메리아와의 원정경기에 교체로 출전하면서 데뷔를 했고, 그 경기에서 발렌시아는 2-1로 승리했다.

 그러나 로날드 쿠만 부임 이후 거의 기회를 잡지 못했고, 2008년 1월 다시 에버튼에서 선수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에버튼은 임대 선수였던 그를 잡아두고 싶었으나 발렌시아의 에메리 감독은 그의 필요성을 인식했고, 2008~09시즌에 무려 27경기 20선발 7교체 1764분을 소화하며 알벨다(2276분), 바라하(1829분)와 함께 정규 주전으로 활약 하며 도약 하나 싶었지만 2009-10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임대를 다녀온 에베르 바네가의 활약에 밀려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길어졌다.

  2010년 겨울에 인테르 밀란이 임대를 요청했고, 모든 합의가 완료되어 밀라노로 갔으나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하며 발렌시아로 돌아왔다. 2010년 여름에는 말라가에서 임대 요청이 왔으나, 이는 마누엘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2010~11 시즌에도 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고, 2011년 1월 터키의 베식타스로 완전 이적 조항을 포함한 임대를 갔고, 2011년 7월 완전 이적했다.

 

Honours

2003-2004 포르투갈 Taça de Portugal 우승
2004-2005 포르투갈 수페르리가 우승
2005 포르투갈 수퍼컵 우승

2007-2008 스페인 코파 델 레이 우승

2010-2011 터키 터키쉬 컵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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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Rosarian 2011.12.17. 14:00

호날두 다큐 보다가 나와서 찾아보게 됐는데 엄청난 기대주였군요 


아쉬운 선수네요 

댓글
리빙스턴 2012.04.02. 14:34
요즘 터키에서 그나마 좀 하고 있다던..
댓글
쎄피로쓰 2012.04.04. 13:35
애증의 마네레레... 다른것 보다 들인 돈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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