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스압, 데이터주의)홍콩에서 살아남기1
- Ake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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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다음 주면 홍콩에 온 지 한 달째네요. 그간 있었던 일도 제 스스로 좀 정리하고 기억도 확실히 해둘 겸해서 올려봅니다.
연구 경력을 이어나가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드디어 올해 4월에, 홍콩의 City University of Hong Kong(이하 CityU)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기회를 잡게 됐습니다.
제가 취업 비자를 받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고 한국에서 하던 연구들을 논문으로 마무리하고 가야했어서,
원래 CityU에 연구원으로 합류하기로 계약한 10월 1일을 훌쩍 넘긴 11월 20일에 홍콩으로 건너 왔습니다.
11월 21일부터 출근 신고를 했으므로, 다행히 11월 마지막 열흘 동안 일한 월급을 챙길 수 있었죠.
지금 교수님과는 제가 내년 여름까지는 연구원으로 일하고, 9월부터 박사과정으로 대학원에 들어가기로 이야기가 됐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대학원 입학에 필요한 토플 준비도 하고 이것저것 서류도 챙기면서, 당장 참여하고 있는 연구 프로젝트 때문에
실험 + 논문에 필요한 그림도 그리느라 바쁘게 지냈습니다.
가는 날, 출국장 안에서 탑승 수속을 기다리면서.. 심심해서 아뭉도 들어가보고 그랬었죠.
다른 나라에 간다는 것보다 정말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는 게 더 설렜었습니다.
홍콩으로 건너갈 때는, 낮 시간에 출발하는 것 중에 가격이 싼 편이었던 에어인디아 항공을 이용했습니다.
기내식으로 난 + 커리가 나오려나 하면서 골랐었죠.
제가 탄 비행기는 인천에서 홍콩을 경유해서 뭄바이까지 가는 거였는데, 이날 자리가 좀 남아서
승무원에게 물어보고 나서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자리로 옮겨 앉았습니다.
중간에 음료수를 나눠주길래 패기넘치게 발렌타인을 주문했죠.
차라리 보드카 + 오렌지쥬스를 부탁해서 스크류드라이버라도 해먹을걸 하고 후회했습니다.
홍콩까지는 비행기로 3시간 30분~4시간 정도 걸리는데, 낮 시간이라 정신도 말짱하니 논문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쓰고보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데, 발렌타인 한잔 걸치고 나서 나름 열심히 복습했습니다.. 진짜루요..
기내식으로 먹었던, 삶은 생선살에 양념을 얹은 덮밥입니다.
치킨, 돼지고기, 생선 셋 중에 하나 고르라길래
'치킨, 플리스' 라고 했는데 한 입 먹어보니 생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맛이 괜찮아서 아무 말 없이 먹었어요.
가운데 LURPAK은 버터인데 홍콩에 와서도 학생식당에서 빵에 발라먹습니다.
고소하면서 살짝 짭잘해서 꽤 괜찮더라구요.
기내식을 먹고, 두어 시간이 지나니 홍콩에 도착했습니다.
공항 안에서 뭔가 '여기가 홍콩이다' 하는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아무 생각없이 '룰루랄라'하고 나온 탓에 좋은 사진이 없네요.
원래는 지하철을 타고 CityU로 가려고 했는데, 교수님께서 그냥 버스타고 내리면 정류장이 학교 바로 앞이라시길래..
버스를 탔습니다만, 제가 여기서 중대한 실수를 하는 바람에 살짝 멘붕이 왔습니다.
홍콩으로 올 때, 인천공항에서 미리 환전을 해 왔는데
바보같이 1000달러, 500달러 지폐로만 돈을 받아왔던 거죠.. (홍콩 화폐는 홍콩달러입니다. HKD라고 줄여서 부르더라구요.)
그래서 공항에 있는 버스 매표소로 가서 '저.. 500달러 짜리 좀 100달러 짜리로 바꿔주세요..' 라고 했으나
다들 'ㄴㄴ' 라며 단호하게 안된다길래, 에이 모르겠다 하고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침착하게 제 뒤에 서 있던 분들을 먼저 타게 하고, 제가 마지막에 올라탔지만..
거스름돈을 내주는 기계도 없이, 요금통 + 버스카드 대는 곳만 있는 모습에 저는 당황하기 시작해서,
제가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500달러를 요금통에 넣으려는 걸 화들짝 놀래서 막는 모습에 멘붕이 슬슬 오기 시작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사 아저씨도 '아니, 이런 미친...' 소리가 절로 나오셨을 것 같네요.
공항에서 학교까지 버스 요금이 20달러(우리 돈으로 약 2800원)인데,
버스 승객들 제가 다 태우고 가는 것마냥 500달러(약 7만원...)를 반쯤 포기한 상태로 넣으려는 저를 보고 얼마나 놀래셨을지...
제가 '죄송해요. 저 1000달러랑, 500달러짜리 밖에 없어요 ㅠㅠ' 하면서 쭈뼛쭈뼛하고 있으니,
기사아저씨도 뭔가 포기하신 표정으로, '그냥 타셈;;'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그냥 탔습니다.. 미안해서 땀을 뻘뻘흘리면서요.
다행히, 버스에 먼저 타신 분 중에 저를 지켜보던 한 할머니께서
제 500달러를 100달러짜리와 50달러, 그리고 동전들로 바꿔주신 덕에 그걸로 버스요금을 내고 마음 편히 학교로 갔습니다.
물론 저를 도와주신 할머니께도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구요.
무사히 학교에 도착해서는, 교수님과 저녁을 먹고 학교에서 지하철로 4정거장 떨어진 야우마테이라는 지역에 숙소를 구했습니다.
1방을 4명이 같이 쓰는 곳인데, 2층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자마자 그냥 찍은 사진입니다.
이 숙소에서 금요일까지 지내고, 금요일 아침에 체크아웃을 했는데...앞으로 제가 어떤 어려움을 겪을 지 상상하지 못했어요.
바로 그 날 저녁부터 저는 홍콩에서 외국인이 집을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온몸으로 느끼고야 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서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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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6
써놓고 보니 고생은.. 사실 별게 아닐 수도 있겠네요.
인상깊습니다
그당시 회사일이 너무 바빠서 힘들었는데
홍콩 가끔 생각나네요
힘내세요~
저 치매안걸리게 해주세요
빨리 담편이여 !!!!
주윤발의 발자취를 느끼러.....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