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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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축구이야기

내가 본 94년 월드컵 (사진有)

 94년 당시만 해도 미국은 세계 축구의 마지막 개척지였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스포츠가 눈부시게

 

발달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축구와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미국 시민의 대다수가 축구에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미식 축구에 익숙한 그들에게는 손으로 해서는 안되고 발로만 하는 축구가

 

놀랄만한 일이였고 이해하기도 힘든 부분이였습니다.그리고 무엇보다 NBA(미국 프로 농구)의

 

또다른 부흥기였다는 점이 축구에 관심을 더 없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 당시 NBA는

 

수많은 스타들이 한꺼번에 배출 되는 춘추 전국 시대를 맞았었고 불세출의 스타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등장으로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그에게 열광 하고 있었기에 축구가 미국 시민들에게 주는

 

영향력은 미약했거나 아니면 아예 없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에어 조던이라고 불릴만큼 그의 점프력은 대단했다.>

 

                                          <매직 존슨과 조던의 대결>

 

               <시카고 3인방 조던,피펜,로드맨>                                                      <찰스 바클리>

 

이런 미국이기에 축구계의 양대 산맥인 유럽과 남미에서는 미국 개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불만이 높아만 갔습니다.심지어는 축구 자체를 모독한다며 거센 저항까지 보냈었는데요..

 

뚜껑을 열어 본 결과 그들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고 곧 불만은 환호로 바뀌며

 

가장 성공적인 대회로 기록 되었습니다.

 

 매 경기마다  매진 행진을 이어갔고 이미 조별 예선을 통과한 나라들 끼리의 대결과 승부가 뻔한

 

경기에도 자리가 남지 않았으며 특히 미국 시민이 경기장의 60%를 차지했다는 것은 가히 놀랄만한

 

일이였습니다.더욱 놀랄만한 것은 그 많은 세계 여러 사람들의 관전에도 불구하고 예전 대회와는 달리

 

훌리건이나 국가별 다툼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던 가장 조용하고 화합된 세계적 대회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FIFA의 미국 개최는 여러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선택이 되었으며

 

세계 축구의 마지막 불모지 미국을 개척 했다는 점과 이념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던

 

동구권들과의 화합이라는 크나큰 의의를 남기게 됩니다.

 

 

 

 

 

 

또한 FIFA의 노림수였던 거대한 미국 자본 시장의 공략 성공은 나이키,아디다스,코카 콜라,

 

펩시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의 눈에 들어 오면서 더이상 축구가 스포츠가 아닌 거대한

 

산업으로 변모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많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TV를 통한 중계권 수입은 엄청났으며 그 때 당시 FIFA 회장이였던 아벨란제와 블래터

 

사무 총장은  자신들이 구상했던 계획들을 하나 하나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며. 본선 참가국 수를

 

24개국에서 32개국으로 늘리고 총 52경기에서 64 경기로 만듭니다.

 

이는 그들의 꼼수인 '지금까지는 6게임을 치르고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이제는 7게임을 치르게 된다.

 

참가국 숫자를 계획대로 늘리면 수입은 기하학적으로 늘게 된다' 라는 생각들이 잘 반영 된 것입니다.

 

상업적으로 뜻이 잘 맞았던 아벨란제와 블래터는 경기장의 펜스도

 

광고판으로 만들었던 인물들이였고 축구 산업을 눈부시게 발전시킨 사람들이였지만 스포츠 정신이

 

결여 된 돈에 움직이는 스포츠를 만들었다는건 기정 사실입니다.하지만 여러 가지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재정적인 수단이 없었던 FIFA는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들을 의지했고 신뢰했습니다.

 

 

 

 

 

 

94 미국 월드컵에서 또 주목할만한 점은 FIFA가 개정한 축구 룰이였습니다.

 

승점제 변경, 오프사이드 적용 완화, 백패스(골키퍼가 손으로 잡을 수 없음)및 백태클 금지,

 

심판 권한 강화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90년 대회때 있었던 수비적 압박 축구로 인한 흥미 감소 요소를

 

공격 위주 축구로 전환 시키면서 없애고자 했으며 페어 플레이를 강조하고 선수들, 특히 공격수들을

 

보호 했습니다. FIFA가 이런 제안들을 내놓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 바뀐 승점제 때문에 조별 예선은

 

 공격적으로 하겠지만 토너먼트에 오른 팀들은 다시 수비 축구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하지만 

 

사람들의 우려는 보기 좋게 빗나갔고  토너먼트에서도 많은 골이 나오면서 대회 총 141골(총 52경기),

 

게임당 평균 2.71골이라는 결과를 냅니다.

 

이는 지난 90년 대회인 2.21골 보다 0.5골이, 8년 전인 2.53보다 0.18많은 수치이며

 

세계 축구가 공격 축구로 변모했다는 의의를 낳게 됩니다.

 

                      <94 대회 공동 득점왕인 스토이치코프와 살렌코>

 

 

이와 함께 주목할 점은 전술의 변화인데요..

 

특히 카나리아 군단(브라질)의 4-4-2 전술의 변형인 4-2-2-2는 우승까지 하면서 축구계에

 

핵폭탄을 터트립니다.이 전술이 94 대회에서 처음 사용 되었던 것은 아니였습니다.4-4-2 전술은

 

브라질 축구가 세계를 압도했던 1960년 부터 사용했었는데요..공격시 좌우 풀백과 윙어들의

 

순간적인 침투로 인한 2-4-4의 형태는 무수한 골들과 함께 세계를 평정했고,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합니다.축구에 대한 열정과 축구를 즐기는 자세, 거기에 더해진 브라질 특유의 유연함과

 

리듬을 타는듯한 개인기..그리고 폭발적인 스피드는 팀 전술과 맞물리며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었고 그 위력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하지만 이런 브라질은 세계 축구의 시기

 

대상이 되었고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브라질을 집요하게 분석하며 끊임 없는 공략을 내놓게

 

합니다. 또한 74년 월드컵 대회 방식이 이전과는 다르게 변경되면서 준결승과 준준결승이

 

없어지게 되면서 흥미를 반감시켜 버리는데요....

 

본선 16개국 4개 조로 나뉜 후 조별 리그를 통해 각 조 1,2위가 8강에 가는 것 까지는 이전과

 

비슷했지만, 8강에 올라간 팀들이 다시 2개 조로 나뉘어 각 조 1위 팀이 결승전을,

 

각 조 2위 팀이 3,4위전을 한다는 다소 애매한 경기 방식이였습니다.

 

이런 룰로 가장 많은 특혜를 받은 나라가 개최국 서독인데요...냉전의 시대였던 그 당시 서독은

 

동원령 선포와 특공대 투입등 긴장되고 삼엄한 경비 속에서 벌어진 동독과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고의적으로 지면서 조 2위로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브라질을 교묘하게 피하며 결국

 

폴란드, 스웨덴, 유고슬라비아하고 같은 조가 되는 목적을 달성합니다.

 

하지만 속이 다 보이는 꼼수를 부린 서독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자존심 때문에 개인기만을 너무

 

고집했던 것이 패배의 원인이라면서 여러 여론의 비난과 질책을 회피합니다.하지만 결국

 

요한 크루이프와 토탈 싸커라는 최첨단 신무기로 무장해 세계 축구사의 한 획을 긋게되며

 

세계를 깜짝 놀랜 네덜란드를 누르며 우승합니다.

 

이 대회에서 수비수가 공격을 한다는 리베로라는 축구 전술의 신개념이 베켄바워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지만 세계를 놀래켰던 네덜란드의 토탈 싸커와 그 중심에 있었던 요한 크루이프 비해 그 파급

 

효과는 다소 미약했습니다.만약에 서독의 조별 예선 노림수가 없었다면 1974년 월드컵 우승은

 

네덜란드가 했었을거라는 다소 조심스런 판단을 해봅니다.

 

 

 

어쨌든 이런 경기 방식은 82년 대회 이전인 78년 까지 이어지면서 브라질의 우승 흐름을 끊어 놓게

 

됩니다. 물론 펠레와 여러 스타들이 빠진 브라질은 전력이 떨어지게 되었고 리벨리뇨만이 혼자

 

분투하기는 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들의 집중 견제와 피파의 어정쩡한 대회 방식 속에서 과거의 영광을

 

찾기란 공포의 왼발이 너무 쓸쓸 했었습니다.

 

 

 

 

70년대의 암울한 우울기를 보낸 브라질은 1982년에 1974년 이전의 대회처럼 개정된 대회 방식과 함께

 

결국 4-4-2의 변형인 4-2-2-2를 가지고  나타납니다.이 때의 브라질은 또다른 스타들이 쏟아져 나왔는데요..

 

지코, 소크라테스, 세레조, 팔카우라는 환상적이고 강력한 미들필더 4명이 중원에 배치 되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Magic Square(마법의 4중주), 또는 Golden Square(황금의 4중주)라는 명성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한 번 끊긴 우승의 흐름을 다시 잡는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였습니다.

 

토탈 싸커가 휘집고 간 유럽의 수비는 더욱더 견고해졌고, 압박 축구는 날로 날로 발전해 갔습니다.

 

또한 Magic Square의 화려한 앞면 과는 달리 뒷 공간이 약점으로 드러나면서 브라질은 다시 꿈을 접게

 

됩니다.특히  '1골을 먹으면 2골을 넣으면 된다.' 라는 브라질의 축구 철학은 여지없이 무너졌으며,

 

94년 개정룰이 나올 때 까지 아무리 Magic Square를 보유한 브라질였을지라도

 

압박 수비와 빗장 수비 앞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브라질도 결국  90년 대회 때는 잠시

 

3-5-2로 바꾸게 되지만 유럽식의 압박 축구라기 보다는 오히려 공격 위주의 축구가 되었기 때문에

 

다시 참패를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94년에 브라질은 다시 4-4-2의 변형인 4-2-2-2로 돌아 왔고

 

변경된 룰은 그런 브라질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습니다.결국 브라질은 전 세계  축구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되며 유럽의 강세 속에 나가 떨어진 여느 남미 팀 하고는 다르게

 

혼자 꿋꿋하게 살아 남아 남미의 자존심을 지키게 됩니다.

 

 

 

 

 

 

그 때 당시 유행했던 전술은 압박 축구의 3-5-2나 또는 그것에서 변형된 것이였습니다.이 전술은 처음에

 

서독(독일)에서 쓰던 1-3-3-1-2에서 출발 하는데요..리베로인 베켄바워의 지속적인 활약으로 인해

 

결승까지 올라간 독일이 결국 승리가 중요한 결승전에서 3-5-2의 변형인 3-4-1-2로 바꾸게 됩니다.

 

이는 한명의 리베로, 두명의 마커, 두명의 홀더(MF), 공수 전환이 가능한 두명의 측면 수비수,

 

한명의 플레이 메이커, 두명의 포워드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결국은 우승 컵을 안게 됩니다.

 

또한 86년 대회 때 아르헨티나의 사령관인 감독 비야르도가  잉글랜드와 맞붙게 되는 8강전 까지

 

꼭꼭 숨겨둔 3-5-2의 변형인 3-5-1-1을 히든 카드로 꺼내들며 마라도나 효과를 극대화 하여

 

우승하게 됩니다.비록 신의 손 사건으로 많은 비난과 질타를 받았지만 아르헨티나가 사용한 전술은

 

세계 축구 전술에 완전 정착하게 되었고 축구 변방국에 까지 퍼지게 되며 특히 94대회 이전에 수비

 

축구와 압박 축구로 재미를 톡톡히 봤던 유럽 여러 나라들이 주로 선호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뀐 룰로 인해 그 효과가 극대화 된 삼바 군단의 변형 4-4-2에는 당해 내질 못했습니다.

 

공수 간격의 폭이 일정하여 공수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90분 내내 공수 전환이 자유로운

 

 4-4-2 전술은 그야말로 축구계의 커다란 바람을 몰고 왔고 결국은 3-5-2 전술을 점차 퇴보 시키고,

 

4-4-2 전술이 정착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합니다.

 

우리 나라는 그 때 당시 1-4-4-1의 전술을 사용 했었는데요..스위퍼인 홍명보가 리베로의

 

역할을 하면서 경기 중간 중간에 4-4-2로 변형 되기도 했었습니다...아..이렇게 지금 생각해 보니깐

 

홍명보 선수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군요..그 때 당시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동양의 베켄바워라는 찬사와 함께 우리에겐 리베로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경기 후에 이탈리아의 한 기자가 '저 선수가 정말 고작 5천 만원 짜리 선수입니까?

 

적어도 20억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선수입니다.'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는거 같습니다..

 

어쨌든 94년 대회 때 삼바 군단이 가지고 나온 변형 4-4-2 전술은 현대 축구의 전술로 자리 잡았고

 

기존의 수비 위주의 압박 축구가 아닌 새로운 공격 축구의 시대를 열었으며 지나친 수비 위주의

 

경기로 흥미를 잃어 가던 세계 축구 역사의 판도를 바꾸는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브라질도 전 대회 때 너무 공격적으로 나와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다소 수비 지향적인

 

플레이를 펼칩니다. 결국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국으로 돌아 가서는 브라질 답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민들의 온갖 야유와 비난을 받게 됩니다.이렇게 보면 동서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욕심이라는게 끝이 없나 봅니다.

 

브라질 국민들의 머리 속엔 우승은 당연히 하는거고 얼마만큼 재미있는 경기를 하며,

 

또 얼마만큼 상대를 농락하여 큰 점수 차로 이기는가가 가장 중요한 관점이였던거 같습니다.

 

2002년 경기 후에 우리 나라 국민들도 브라질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보는 눈과 비례하여 욕심도 많이

 

 커진듯 합니다.국민의 바램과 기대가 크다는 것은 축구 선수의 기량과 축구 자체의 발전을 가져 오는

 

긍정적인 면을 낳기도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된다면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여 역효과를 내는 면이

 

더 많을 것입니다.

 

 

아..여기서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 있습니다.

 

그 때 당시의 미국의 날씨인데요..매 경기 마다 4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더위 때문에

 

선수들은 정말 힘겹게 경기에 임했었습니다. 압박 축구를 펼친 세계 여러 나라들은 후반에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그 결과는 곧 패배라는 또 다른 결과를 낳게 됩니다.

 

특히 극심한 체력 감소는 전 대회 우승국인 전차 군단 독일이 두드러졌는데요...

 

통산 4회 우승이라는 목표와 통일이 되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전술면에서등 여러 면에서

 

이익을 받은 플러스 효과와 클린스만이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로 정신적으로나 전술적으로

 

강하게 무장한 독일이였지만 압박 축구로 인한 체력적인 한계점에 부딪히면서 우리 나라와의

 

경기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며 약점을 드러내더니 결국 8강 전에서 불가리아에게 2:1로 패하고 맙니다.

 

 90년 대회 우승팀인 독일은 그 후 수년간 세계의 언론으로 부터 녹슨 전차라는 오명를 얻게 되며

 

자존심을 구기게 됩니다.  (그래봤자 8강이지만..98 프랑스 월드컵 8강)

 

 

아무튼 그 때 당시에 압박 축구를 하는 팀들은 살인적인 더위 때문에 후반에 급격한 체력 감소로

 

인한 약점을 노출했었고 그 결과는 패배로 이어졌습니다. 만약에 미국의 기후가 유럽 여러 나라의

 

기후인 서안 해양성 기후였거나 또는 미국 보다 선선한 지중해성 기후였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였습니다.

 

어쩌면 어린 호나우도(브라질)를 더 빨리 보았을 수도 있었을거고 이탈리아가 우승 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물론 개인적인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전술이라는건 시대의 흐름이고 유행입니다. 완벽한 전술은 없으며 무적인 전술은

 

 더더욱 없습니다. 다만 축구 역사의 흐름에 변화되고 유행할 뿐입니다.

 

지금 우리가 거의 매일 접하는 4-4-2나 또는 거기에서 파생된 변형 4-4-2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감히 해봅니다..

 

 

 

 

 

 

 

세번째로, 94 대회는 많은 이변을 낳았고 특히 축구 변방국들의 도약이 두드러진 대회였습니다.

 

축구 종가 영국이 4개 지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 아일랜드, 웨일즈) 모두 예선 탈락 하는 수모를

 

겪었고, 1998 대회의 개최를 앞 둔 프랑스마저 90년 이탈리아 대회 탈락 후 또 한 번 탈락 하게 되는

 

망신을 당했습니다.. 반면에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과 발칸 반도의 루마니아 그리고

 

스토이치코프의 불가리아가 그들의 발목을 잡으면서 본선에 진출하며, 본선에서 조차

 

호성적을 거두며 강력한 인상을 남겼습니다..이변은 남미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났습니다. 

 

용병술의 귀재 프란시스코 마투라나 감독의 콜롬비아는 지역 예선에서 아르헨티나를 5:0으로

 

대파 하면서 아르헨티나를 호주와의 플레이 오프라는 벼랑 끝으로 내몹니다. 또한 우리 나라와

 

한 조에 속하게 되는 볼리비아는 브라질을 2:0으로 격파하는 파란을 일으키고, 전통의 강호

 

우루과이는 탈락하고 맙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역시 강한 인상을 남기며 특히 90년 카메룬에 이은 나이지리아의 돌풍과

 

아시아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돌풍은 그만큼 우리에게 크나큰 흥미와 재미를 주었습니다.

 

이렇듯 세계 여러 곳곳에서 일어난 축구 변방 국가들의 약진은 더이상 이변이 아니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계 축구의 격차가 줄어 들고 있다는걸 입증한 것이였으며

 

94 월드컵의 또 다른 의미로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94년 월드컵의 개최 배경과 의의를 대충 알아봤는데요...이번에는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ㅡ^ 팬던트 제작자 감독님전언제나가요 입니다.

이번엔 축구 역사 시리즈를 한번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 글은 저희 쇼핑몰 부운영자인 나를 매니저님이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원문

http://narl.co.kr/front/php/b/board_read_new.php?board_no=3&no=311&number=<b>공지</b>&offset=0&page=1&search_key=&search=

 

 

 

        www.nar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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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리빙스턴
2010.03.28. 12:24

제 머리속에 기억나는 첫 월드컵이네요. 90년 월드컵은 게임을 통해서 그런 대회가 있구나.. 정도였기 때문에 -_-;

당시 94년 월드컵을 보면서 프랑스는 본선에도 못올라오는 걸 보니 축구 엄청 못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었죠 ㅋㅋ

[리빙스턴]님의 댓글을 신고합니다. 취소 신고
아이쿠수줍
2010.03.28. 13:02

아.. 94년 월드컵 진짜 추억이네요. 이 땐 해외 축구 개념 자체가 별로 없어서 아무 생각없이 한쿡만 응원하고 그냥 보기만 했었는데, 기억나는건 역시 클린스만..ㅋㅋ 이 때 알게 된 해외 선수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클린스만이 가장 인상 깊었고 그 이후에 97-98년 쯤부터 스페인 좋아하기 전까진 클린스만을 제일 좋아했더랬죠. 피파96, 97 시리즈 같은거 하면 독일 고르고.ㅋ

그리고 미쿡 월드컵 때 문방구였던가 어디에서 각 국대들 카드 같은거 팔아서 그거 모았던 것도 기억나고, 선수들 스티커 사진 같은거 붙여서 모았던 북도 생각나네요. ㅋㅋㅋ

[아이쿠수줍]님의 댓글을 신고합니다. 취소 신고
호아킨비야산체스
2010.03.28. 13:09

뭐니뭐니해도 94년 미국월드컵 최고의 순간은 스페인전 2대2 무승부라는ㅋㅋ

[호아킨비야산체스]님의 댓글을 신고합니다. 취소 신고
rage
2010.03.28. 14:55

아 기억이 새록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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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talla-Bat
2010.03.28. 15:17

전, 아침에 일어나니 이탈리아 vs 브라질 경기 아빠가 보고있는거 봤네요.

바죠가 실축하는거.. 생생하네요

 

그러나, 그전 경기는 아무것도 못봄 ㅋㅋ

 

본격적인건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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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2010.03.28. 20:48

94.... 1살때인데 2살인가; 93년생이면 ㅋㅋㅋ

[푸조]님의 댓글을 신고합니다. 취소 신고
보리스
2010.03.28. 22:36

저는 태어날때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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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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